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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의사(의대 교수)의 하루

by 생계형연구자 2023. 8. 22.

제목에 '대학병원 의사'와 '의대 교수' 둘 다 쓰기가 어색하고 약간은 민망합니다.

저는 엄밀히는 병원 소속이고, 의대에서 전임 발령을 받은 교수는 아니어서요.

그래도 제가 지켜보기에 저와 같은 과에 계시는 '진짜' 의대 교수님들의 생활 패턴도 기본적으로는 저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저처럼 대학병원에 있는 사람들의 소속이 병원과 의대 양쪽에 걸쳐있기 때문에 일단은 저렇게 표현했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저와 같은 대학병원 의사(의대 교수)의 하루 일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의 일상이 보편적인 대학병원 의사들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는 서비스 파트(영상의학과, 병리과 등)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상상하시는 내과/외과 선생님들과는 스케줄과 로딩이 상당히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1. 출근

저는 출근을 빨리 하는 편입니다. 늦어도 병원에 6시 30분 경에는 도착합니다.

제가 출근을 빨리 하는 이유는, 퇴근을 빨리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정에 충실하고 육아에 참여하려면 오후 6시에 칼퇴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들은 적지 않기 때문에 그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출근을 빨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원래 밤을 즐기는 올빼미형 인간이었고, 전공의 때에도 이렇게 일찍 출근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래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니 하게 되더군요...

다행히 제가 해야 하는 일은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검사를 판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 중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2. 오전 근무

여러 자기계발서에서 공통적으로 새벽 근무의 효율성을 강조합니다.

가장 큰 장점은 방해 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누가 전화를 하거나 말을 걸지 않기 때문에 판독에 집중하면서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새벽부터 일을 하다가 하나씩 둘씩 출근하는 사람들과 인사하다보면 아침이 됩니다.

저희 병원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오전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까지입니다.

 (판독실에 오는 전화도 이 시간 동안만 받습니다. 8시 59분에는 전화벨이 울려도 꾹 참습니다)

 

저는 출근 시간이 빠르니, 오전이 길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판독하다가 지겨우면 자체적으로 점심을 조금 일찍 먹기도 하고, 연구 관련된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3. 점심 시간

보통 오후 12시에서 오후 1시까지가 점심 시간으로 인식됩니다.

이렇게 애매하게 쓴 이유는, 적어도 제 주변에서는 그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20분이나 길어야 30분 이내로 점심을 해결하고서는 다시 진료(판독)를 시작합니다.

 (물론 회의/연구미팅이나 약속이 있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저는 밥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균형잡힌 맛있는 식사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점심을 좀 더 오래 먹기는 합니다)

 

4. 오후 근무

공식적인 오후 근무 시간은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예전 인턴 때 누군가가 칼퇴란 '오후 6시에 병원 정문을 통과해서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했었는데, 현실은 좀 다릅니다.

근태 관리를 엄격히 하는 곳에 계신다면 근무 시간과 장소를 잘 준수하셔야 합니다. 물론 근태는 기본이지만요.

 

제 경우에는 오전 근무를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오후에는 페이스가 다소 떨어집니다.

사람의 집중력이 한계가 있다보니 하루에 (제대로) 판독할 수 있는 검사의 수도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에 일정 개수 이상 판독하는 것은 피하려고 합니다.

판독 말고도 할 수 있는(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도 하고요. ㅎㅎ

대부분은 연구와 관련된 활동이나 과/학회일을 하면서 오후 중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외부에서 회의가 잡히거나 학회가 있는 경우에는 일찍 병원을 나서서 바깥 바람을 쐬기도 합니다.

 

5. 퇴근

대망의 퇴근입니다. 하지만 뭘 할 수는 없고, 얼른 집에 가서 육아에 참여해야 합니다.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가정에 평화가 찾아오고 아이들과의 추억을 쌓을 수 있습니다.

가끔씩 아이들이 일찍 자 주는 날에는 와이프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구요.

하지만 다음 날도 일찍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늦게 자면 힘듭니다.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최대한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평범한 하루 일과입니다. 어떤 삶인지 감이 오실지 모르겠네요.

제가 외래를 보거나 수술을 하는 과가 아니다보니, 매일매일이 더 비슷하고 잔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잔잔한 수면 아래에서는 저에게 할당된 진료량을 채우고, 저에게 기대되는 연구 업적을 달성하고, 가장이자 부모로서 요구되는 역할들을 수행하느라 매일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 나이가 커리어와 육아 모두 놓칠 수 없는 때이다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반복적으로 이렇게 살다보니 적응이 되어서 많이 힘들지는 않고 적당히 할 만합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행복했던 때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P.S. 사진은 존스홉킨스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 방은 무척 어두운데 판독대 화면 뒤에서 푸른 빛이 나오네요. 저희 병원이나 제가 가 본 다른 곳은 저렇게 어둡지 않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모니터 오래 보면 눈이 아파요.